중앙동 소개

중앙동은 서귀리의 중앙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동이라는 데에서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서귀포시청과 서귀포등기소 등 행정기관이 몰려있고 상업의 중심지로 명실공히 서귀포시의 핵심지구입니다.
‘서귀포’란 이름은 중국 진시황 시절에 부사약을 구해오라고 보낸 동남동여 중 서신이 이 곳을 지나가면서 ‘서시과차’라고 정방폭포의 절벽에 새겼다는 데서 유래합니다. 조선시대까지 마을의 포구는 후풍처의 구실을 했으며, 1439년(세종21년) 서귀포가 ‘서귀진’이 되며 활성화되었습니다. 1589년(선초22년)에 홍로천 상류에 있던 ‘서귀진’이 마을의 중심(지금 제일교회 자리)로 옮겨오며 이 무렵을 전후로 설촌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1910년대까지만해도 서귀포는 ‘구린새끼’, ‘동동네’, ‘섯동네’, ‘솔동산’ 부근 등 200여 호의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주변의 논밭을 가꾸고 풍선을 부려 근해어업을 하며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말 한때 서귀포는 ‘덕리’라 불리었으나 어선들이 어로 작업차 나갔다가 화를 자주 당하는 것이 이름 때문*이라고 생각한 마을 사람들이 지금의 ‘서귀포’로 고쳐 부르기 시작한 것이라 전해지고 있습니다. *덕리의 ‘풍덩풍덩’과 관련
이 후, 서귀리는 일제 강점기로 접어들게 되는데, 이 때 일본인 어부들 5세대가 어장 확보를 위해 이주하여 ‘내팥’(지금 천지연 입구 주차장 부근)에 거주하며 고래공장을 세워 인근 어장으로부터 고래를 포획해 가공했습니다. 고장 출신 강성익이 일본인들과 합작하여 단추공장과 해산물 등의 통조림공장을 시설했으며 이 때 서귀포는 급성장했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 후 5.16까지 이어지는 동안 이 마을은 감귤 재배가 활성화 되어 주변 여건이 좋은 과수원들의 의해 부유해지며 7~80년대에는 관광 붐과 파인애플, 바나나 등 특용작물 재배 붐이 일어나며 마을이 부유해지고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1981년 서귀포시로 승격되며 서귀1,2리와 일부가 합쳐져 ‘중앙동’으로 신설되었습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중앙동 인근 지역인 동홍동·서홍동 등 주거단지가 개발되며 주거인구가 감소되고, 2000년대 서귀포 올레시장이 재정비되며 관광객들이 올레시장으로 몰리며 중앙동의 골목상권은 침체되기 시작했습니다. 중앙동을 중심으로 대규모 주거단지와 서귀포 최대상권, 관광지역, 행정 중심지가 위치하였습니다. 중앙동은 도심 속의 섬처럼 활성화 지역에 묻혀 쇠퇴가 가속되었습니다.

중앙동네 예체능

중앙동네

중앙동 주민 주도적 사업 추진을 통해 도시재생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자 합니다.
지속가능 도시재생 기반 확보
     –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운영, 지역주민역량강화사업, 기록화 및 홍보사업
     지역과 함께하는 돌봄자리 조성
     – 통합돌봄센터 조성

도시재생의 기반이 되는 건축과 디자인 영역을 중심으로 중앙동 주민과 젊은 창작자들을 연결합니다.
예술이 숨쉬는 문화커뮤니티 활성화
  – 커뮤니티센터 조성, 문화학교 운영

건강하고 활기찬 중앙동 주민과 함께합니다.
건강하고 활기찬 우리동네 만들기
  – 중앙동 생활체육센터 조성, 동호회 조직화/운영

중앙동에 필요한 기술을 찾아 젊은 창업자들과 협력하여 중앙동 골목의 활기를 찾습니다.
골목기능 회복과 주거복지 실현
  – 적정기술 창작소 조성, 적정기술 전문가 양성, 골목상권 전환 프로그램 등
  – 노후 불량주택 정비 : 집수리 지원
  – 걸어댕기기 좋은 길: 골목경관 개선